INSTALLATION VIEWS
맥 脈 : 혼과 물질 그리고 소리
Suk Chul Joo / Kwon Dae Sup / Lim Dong Chang
January 21 — March 21_2021
ARTWORKS
전시소개
서구의 문화적 이데올로기 바탕 아래 형성된 미적 구조 안에 갇혀 있는 시대에서 침투되지 않은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란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갤러리 구조는 현시대에서 우리 고전의 미적 본질을 계승할 뿐 아니라 확장적인 방식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성을 획득한 회화, 오브제, 음악 영역의 3명의 거장들을 조명하고자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_KUZO
작가소개
석철주
석철주의 자연
예부터 동양 문화권에서 자연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아우르는 인문 교양의 총체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가 언제나 마주하는 하늘과 땅, 산과 물 등의 삼라만상에 보이지 않은 순환과 질서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석철주도 평생 자연에 천착해 온 한국화가다. 우선 그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상적 경관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몽유도원도>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널리 알려졌듯이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조선 전기 최고의 서화 수장가인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린 산수화다. 어느 날 안평대군은 복사꽃이 만발한 뜰을 노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튿날 가장 아끼는 화가 안견을 불러 자신의 꿈을 그리하고 하명하였다. 안견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유토피아를 서술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토대로 <몽유도원도>를 완성하였다.
석철주는 동아시아의 고전을 수용하여 새로운 이상향을 표현하였다. 화사한 원색이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그의 <몽유도원도>는 아련하고 몽환적이며 따뜻하다. 때로는 솟아 오른 기암절벽이, 때로는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환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멀리서 얼핏 보면 산의 실루엣만 드러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면 치열한 붓질의 교차가 목격된다. 캔버스 위에 색을 펼쳐 바른 뒤 일일이 붓질로 바탕을 지워 이미지를 서서히 부각하는 기법을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화면 전체에 깔린 격자무늬의 마티에르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시사하는 픽셀을 연상시킨다. 단단하면서도 견고한 바탕을 마련해 주는 기본 유닛인 셈이다.
석철주는 몇 해 전 강화도에 작업실 터를 마련하였다. 자연 깊숙한 곳으로 작업 공간을 이전하니 그의 그림도 더욱 깊어졌다. 이전에는 자연 생태를 열심히 관찰하여 화폭에 옮기려 하였다. 삼라만상의 변화와 질서를 파악하고, 그 위대함과 경외감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강화도에 들어와서 산 속에서 생활하니 주변의 소소한 풍경에 시선이 머물렀다. 미처 알지 못하였던 자연의 생명력도 온 몸으로 감지되었다. 땅을 밟고 풀내음을 맡으며 체험하는 자연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원동력 그 자체이었다. 거칠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잡초 한 포기에서 무한한 친근함과 정겨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자연의 기억> 시리즈다.화사한 담채의 <몽유도원도> 시리즈가 눈으로 관찰한 이상의 풍경이라면, 강렬한 흑백의 <자연의 기억> 시리즈는 온 몸으로 체험한 현실의 풍경이다. 주변의 뜰이나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성한 잡초를 가득 배치한, 소소하면서도 일상적인 사물인 셈이다. <몽유도원도>와 달리 <자연의 기억>에서는 캔버스에 검정 아크릴 물감을 칠한 뒤 고무나 죽필로 긁어내면서 잡초와 화면의 공간감을 표현하였다. 화면이 젖은 상태에서 단번에 형태를 드러내야 하는 프로세스는 일획으로 형과 결이 완성되는 수묵화 기법과 다르지 않다. 물로 그리고 물로 지우는 과정이 반복되니, 작가의 손길 너머의 예상치 못한 형상이 파생된다. 동양화의 가장 중요한 조형 요소인 ‘여백’이 생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석철주가 표출한 자연은 섬세하고, 그윽하며, 오묘하다.
_송희경
권대섭
권대섭의 달항아리
권대섭은 40년 동안 달항아리를 만들고 있다. 달항아리는 임진왜란 이후 등장한 조선 백자다. 주성분이 고령토이며 왕실용 백자를 담당한 경기도 광주 분원리 가마터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조선 백자가 중국 경덕진 가마터의 기술을 수용하였으나, 달항아리의 기형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단순하면서도 둥근 형태가 푸근하고 신비로운 달의 형상성을 띠고 있지만 고령토의 무른 점성으로 몸체의 위와 아래를 별도로 만들어 붙여야 하는 까다로운 공정이 뒤따른다. 접합 부분의 흔적이 남고 매끈한 성형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미학자 고유섭은 조선의 달항아리에서 한국인이 간직한 미의식을 찾았다. 바로 “둥글고 큰 맛”,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 그것이다.
권대섭은 조선 왕실의 상납용 그릇을 번조한 경기도 광주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옛 제조 방식을 그대로 계승하며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은은한 색조를 발산시키기 위해, 견고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흙을 거르고, 형을 빚고, 유약을 바르고, 천천히 구워낸다. 고령토의 점성으로 인한 기형의 불균형과 비대칭을 극복하고자 흙에 일부 돌가루를 섞기도 하고, 예민한 불의 성질을 다스리며 전통제조방식을 고수하며 귀한 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다. 일정량의 흙이 지닌 가소성의 한계치를 가늠하여 항아리의 크기를 결정하고, 불의 최고 정점을 계산하여 항아리를 가마터에서 꺼낸다.
흙, 불, 물, 공기의 완벽한 조화로 완성되는 그의 항아리는 간결하지만 부족하지 않고, 단단하지만 부드럽다. 절제미에서 우러나오는 여운의 아우라가 강하기 때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를 입증하듯, 과거 400년 전의 유물이 21세기 예술가의 손끝에서 동시대의 창작물로 인정받은 것이다.
_송희경
임동창
임동창의 운율
임동창은 범상치 않은 인생 여정을 지나온 음악가다. 어린 시절 피아노에 빠져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였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조선의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한 전통 음악인 정악(正樂),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민속악 등 전통음악 전반을 연구하였다. 정악을 공부한 작곡가는 김덕수 패 사물놀이와의 인연을 맺어 우리 장단을 기록할 체계적인 기보법을 개발하여 최초의 사물놀이 악보집을 출간하였다. 우리의 옛 동요인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를 편곡하였고, 정악을 공부한 작곡가답게 백제가요인 정읍사에 근원을 둔 <수제천>과 조선 전기 궁중 음악인 <영산회상>을 재해석하였다.
임동창은 2010년 <허튼가락>이라는 파격적인 음악 장르를 발표하였다. <허튼가락>은 모든 음악적 형식에서 벗어나 오로지 연주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을 자유롭게 표출하게 되는 작곡법이자 연주법이다. 2012년에는 피아노의 현을 치는 해머부분을 새롭게 고안하여 <임동창 피앗고>를 정악용과 민속악용으로 개발, 기존의 피아노 보다 살아있는 입체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는 ‘새로운 피아노’를 내놓았다. 클래식과 현대 음악, 재즈와 국악, 궁중음악과 민속악, 순수예술과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창작의 근원은 바로 ‘풍류’였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신명난 삶의 방식을 ‘풍류’에서 찾은 것이다.
임동창의 음악은 모든 장르와 형식을 초월한 것처럼 자유롭고 흥이 있다. 이러한 여흥은 피나는 연습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룩되는 경지다. 임동창의 음악에서 [장자] 「양생주」에 나오는 포정의 비유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요리를 잘하는 포정이 소를 능숙하게 잡으니, 그 소리가 모두 음률에 맞고 훌륭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포정에게 비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처음에는 소가 무서웠으나 3년이 지나니 소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감각과 지각이 멈춘 상태에서 정신이 행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 하였다. 오랜 연습을 거쳐 테크닉이 완성될 때 비로소 도의 경지에 도달함을 알려주는 일화다.
_송희경